지상관측소 conspic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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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OC 작업
마법부 문을 열고 나오며 루치아는 숨을 뱉었다. 따뜻했던 실내를 순식간에 거짓으로 만드는 차가운 공기가 두 뺨에 와 닿은 탓이었다. 급격한 온도 차를 무마하고자 폐로부터 한 번 더 숨을 끌어모았지만 크게 유의미하진 않았다. 이대로 얼마간 거리를 더 걸을 예정이었으니 냉랭한 기온에 익숙해질 대비를 하는 게 더 나을 듯싶어 그는 코트 옷깃을 당기며 걸음을 옮겼다. 내쉬는 숨이 하얗게 뭉쳐 입김이 되어 허공에 오래간 머무르는 계절이었다. 마법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의미가 없었지만, 연말이 다가온다는 건 머글에게나 마법사에게나 똑같았다. 인구가 더 많은 머글 세계의 기념일 날짜에 맞춰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가족 혹은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 연말을 보낼지 구상하고 다녔다. 자연..
신의 반석 위에서 그가 제어하는 소세계(小世界)의 움직임과 변화를 관측하던 영웅은, 시계가 예정된 시각을 표시하자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연구실에서 빠져나갔다. 베헤모스의 몸과 마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를 위해 존재했으나, 완벽하게 조형된 신의 대리인이라 한들 신의 다른 여느 창조물과 같이 그또한 세계의 법칙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창조물에 마땅한 쓰임새가 있듯 모든 창조물은 적절한 유지와 보수가 필요한 법. 진정 세계를 위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인 규율에서 빗겨가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었으므로 그의 휴식 시간은 항시 일정했다. 그 어떤 일을 하든 예외는 없었다. 물론 간혹 베헤모스의 사고와 관념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그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만큼 그의 부재나, 그가 시선을 주지 않는 일을 두려워..
세상은 까맣습니다. 셀 수 없는 별들이 흩어진 낱알처럼, 누군가 실수로 엎지른 설탕처럼, 햇빛 아래 반짝이는 모래처럼 머물러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해라 부를 만한 별이 떠오르고, 달이라 부를 만한 별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응시하면서도 저는 그 너머 검은 공간에 시선을 두며 밤과 어둠만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라 칭할 만한 모든 것, 저의 팔다리와 저라는 개체의 존재감이 그 속에 섞여드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은 떫은 맛이 납니다. 씁쓸하고, 초라합니다. 그런데도 뱉어내기 보다는 이대로 인내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아마 그것이 모든 개체와 존재의 처음 형태이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요, 당신의 미메시스가 그걸 증명하니까요. 늘 당신에게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