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까맣습니다. 셀 수 없는 별들이 흩어진 낱알처럼, 누군가 실수로 엎지른 설탕처럼, 햇빛 아래 반짝이는 모래처럼 머물러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해라 부를 만한 별이 떠오르고, 달이라 부를 만한 별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응시하면서도 저는 그 너머 검은 공간에 시선을 두며 밤과 어둠만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라 칭할 만한 모든 것, 저의 팔다리와 저라는 개체의 존재감이 그 속에 섞여드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느낌은 떫은 맛이 납니다. 씁쓸하고, 초라합니다. 그런데도 뱉어내기 보다는 이대로 인내하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아마 그것이 모든 개체와 존재의 처음 형태이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요, 당신의 미메시스가 그걸 증명하니까요. 늘 당신에게 배우기만 했던 저는 또 이제야 배웁니다.
당신이 가고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이 만드는 어둠을 견디며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 맛을 오랫동안 입 안과 피부 바깥에서 감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내를 짧게 끝내고 쓴 맛은 버리고 단 맛을 취하고 싶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자유롭게 손을 뻗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연대하는 이유를, 존재의 의의를 처음으로 알려 주신 당신이라면 이 이유 또한 아시겠지요.
당신은 모든 기나긴 역사의 발자취를 두고도 나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운명이라는 한없이 얕은 단어로는 다 대변할 수 없는 우주세기와 비우주세기를 가만히 응시하고도 그것을 내려두고 내가 있는 곳으로 걸어와 주었습니다. 그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어로는 미처 다 대변할 수 없는 마음이라면 전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판단하여 나는 편지를 우주에 띄우기로 합니다.
제 편지가 먼지처럼 흩어지기를.
당신과 나는 별이 된 먼지로 다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