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관측소 conspicilium
6 Posts
명일방주
이리나의 남편에겐 기일이 없었다. 어느날 돌연 사라졌을 뿐 사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다만 기일로 통용되는 날은 분명 있었고, 그건 무에나 니어가 이리나의 남편을 실종 처리한 날과는 달랐다. 그가 실종된 날이란 기실 무에나 혼자 이리나의 남편을 우연히 만난 다음날이자 그가 광석병 발작으로 인해 사망한 날이었다. 이리나의 남편이 살아생전 스스로 이리나 가족과 니어 가문을 떠난 날과는 달랐다.그 다른 날, 이리나는 어린 아가씨들과 자신의 자식을 모두 돌본 뒤 아이들이 잠든 뒤에 홀로 사용인의 식당 겸 조리실에서 술병을 하나 따 마시고는 했다. 병의 라벨은 안에 든 술이 그다지 비싸지 않음을 시사했으며, 하루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술 한 잔을 가볍게 걸치는 일은 귀족과 시종을 막론하고 흔한 일이었으므로 무..
함선은 황야를 향하고 있었고, 갑판은 그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전부 끌어안고 있었다. 갑판에 선 리베리 하나는 그 황야를 전부 감당하기에는 모자라 보였다. 리베리의 탓은 아니었다. 세상을 떠안을 수 있는 개인이 있다면 켈시는 카르멘과 대지에 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개 오퍼레이터인 리베리는 그들이 우물가에서 나눈 대화를 알지 못했지만, 스스로 이미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그의 눈에는 황야가 낯설지 않았다. 엘리시움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지면과 수평선을 이미 등진 적이 있었다. 한 인간이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일로부터 밀려나고 회피하기를 택한 이상, 다시금 비슷한 광경에 압도되기란 어려울 터였다. 감당할 수도 없는 세상의 무게보다 온 몸의 혈관을 타고 도..
※가내 설정이 존재하는 신청자 분의 박사가 켈시와 어떤 관계일지 서사를 구체적으로 빌딩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 켈시 라이브2D 스킨 대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둘 다 한국 서버 인게임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이 유약한 나머지 대체로는 선하지만 때로는 비겁하고 그래서 악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 박사를 보며, 켈시는 로도스 아일랜드가 과연 어디까지 항해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계산하고 가늠했을 것 같습니다. 박사가 선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미야와 동시에 그에 준하는 위치를 맡고 있고, 테레시아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과거를 어찌할 수 없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앞으로의 항해에는 박사가 ‘테라를 위한 결정’을 변수 없이 내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사가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을..
체르니의 방에는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오선지 위에 악상을 그려내느라 사각거리는 만년필 소리와 악곡이 올바르게 새겨졌는지 가늠하기 위해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제외하고는. 체르니에게 그것들은 응당 존재해야 하는 소리였으니 적막의 범주에 끼지도 않았다. 심지어 오늘은 그에게 성화를 부릴 메딕 오퍼레이터들도 없었다. 이번 작곡을 위해 향후 2주간 방 안에 틀어박혀 어떤 생활패턴으로 하루하루를 보낼지에 대한 내용을 3주 전부터 의료부에 소상히 보고한 탓이었다. 그의 보고서 겸 요청서를 본 메딕들은 여기가 개인 병실인 줄 아냐며 불같이 화를 냈지만, 작곡이 끝나는대로 반 년은 의료부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르는 등의 조건 하에 대화는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으며, 일부 메딕들은 그가 이렇게라도 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어디..
I spent my life suffocating, ignoring villains living inside me. Oh, my guilt is never-fading. It forever lives on under my skin, killing me from within. 나의 삶은 질식 속에 있고 내 안의 악을 외면하는 데 쓰이네 아, 나의 죄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숨 쉬며 살아가네 내 피부 아래서, 내 심장 안에서 나를 죽여 가며. Will you stay a part of me for the rest of my life? You tighten your grip like shackles on both my wrists. Will you stay a part of me for the rest o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