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관측소 conspicil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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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세카이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쓸모없다. —1학년 A반 아키야마, 맞지? —소문대로 진짜 예쁘다. —아니, 소문이 약한 거 아니야? 매일같이 질리지도 않고 똑같은 일의 반복일 뿐이다. —선배, 2학년 A반이라고 했죠? … 미즈키는 무겁게 내리눌리는 눈꺼풀을 몇 번씩 깜빡거렸다. 커튼을 치지 않았는데도 방 안은 어두웠고, 벽 너머로도 집안의 고요함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옆으로 돌아 누운 미즈키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켰다. 3시 34분. 그럼 그렇지, 속 편하게 잠 잘 수 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두 시간도 채 잠들지 않았다. 이래서야 오늘 작업은 스킵한다고 한 의미가 없어지잖아, 성가심이 엉킨 심통이 가장 먼저 머릿속으로 튀어나왔지만 다시 PC를 킬 마음은 들지 않았다. 유키의 일로 모두가 예민한..
25시, 나이트 코드에서 메인 스토리, 카네이션 리콜렉션, 시크릿 디스턴스, 그리고 지금, 리본을 묶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함께 힘내 봅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해, 미즈키의 개학식에서. 중학생 카나데와 당시의 아버지에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카나데의 유년시절은 평범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그게 슬픔의 원인이 되기보다는 행복한 추억 그 자체로 남아있을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하고 안온한 나날이었습니다. 한편, 미즈키의 유년시절은 미즈키의 중학교 3학년 시절만 봐도 그렇지 못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령 평온했더라도 게임 내에서 일찌감치 나오고 전개될 수 있던 카나데에 비할 순 없었겠지요. 그러나 공통적..
미즈키는 미지근하게 식은 머그잔을 들었다. 가득 있었던 코코아는 어느덧 절반이 줄어 있었고, 처음 코코아를 입에 댔을 때부터 시간은 4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늦게까지 활동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잠에 드는 이런 시간이면 창 밖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SNS나 포털 사이트의 갱신도 한없이 느렸다. 빛도 소리도 다가오는 것이라고는 모니터로부터 나오는 푸르스름한 전자 기계 안의 것이 전부인 시간. 이럴 때면 미즈키는 어항을 바라보는 마후유의 마음이 무엇일지 알 것 같곤 했다. 자신이 어항을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어항 안에 있는 쪽이라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 감각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던가. 디지털의 물결이 파도가 되고 달빛이 되어 스며들었다 빠..
어느 날, 외면받고 소외되어 무리에 섞이지 못한 한 고독한 인어에게 인어공주가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인어공주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어공주가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육지로 모험하는 꿈을 꾸게 되자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마녀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존재가 되면, 언젠간 공주와 함께 같은 세상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 …. “고토 씨, 대본은 어때?” 스태프가 말을 걸자 나기야는 흠칫하고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네. 좋은 것 같아요. 캐릭터는 색다른데, 기존 동화와 다른 점은 결국 없어서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고토 씨도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네. 피닉스 원더랜드의 홍보 공연으로 테마가 화젯거리가 되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지만, 기존 극들과의 차별점을 어..
피크타임의 마지막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흔들거리다 곧 완전히 닫혔다. 그랬구나, 라는 걸 메루가 알아차리는 건 그로부터 몇십 분이 더 흐른 뒤였다. 설거지 할 시간도 없이 테이블을 치우고, 사이사이 들어온 테이크아웃 주문을 맞추는 데에도 정신이 없던 탓이었다. “멜쨩!” 함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한 사키가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로 그를 두 번이나 부른 뒤에야 메루는 더이상 손님이 없는 홀을 볼 수 있었다. 얼굴에서 물음표를 바로 지우지 못한 메루를 보며 사키는 밝은 표정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친구의 그 표정이 단순히 아르바이트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직업 삼고 싶은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느라 나온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크타임 ..
빙글빙글 도는 관람차,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높이서 우뚝 장식해 왔던 놀이공원의 아이덴티티. 어릴 적엔 그 관람차 안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너무 커서, 이곳을 한없이 돌아다녀도 시간 가는 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고도 둘러볼 곳은 아득히 많을 거고, 관람차 또한 몇 번이고 타도 별하늘처럼 끝 없을 거라고. 그래서 그 관람차를 애써 무시해 왔다. 정말로 소중한 세계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아서 늘상 등 뒤에 둔 채로 스테이지에만 매달리면서. 그러니까, 그 날의 기억은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 츠카사 군이 어디까지 눈치챘을지 생각하는 일조차 두려워서, 눈을 질끈 감고 관람차에 올랐던 기억이 생생했다. 지금의 관람차는 그때 같지도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