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관측소 conspicilium

 

초봄은 아직 춥다.

글로벌 세계는 이상기후라더니, 일본도 예외 없이 3월 중순이 무색하게 찬바람에 귀가 아리고 손발이 조금 찼다. 걸어다니며 스마트폰을 조작하기 좋지 않은 만큼 목에 두른 머플러 끝을 조금 더 당겼다. 장갑을 낄 정도로 유난 떨 날씨까지는 아니었으니, 목을 따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자기기를 만지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손 안에 든 스마트폰 속 시계가 뉴욕이 새벽 5시 10분임을 가리켰다. 베를린은 오전 11시 10분, 시드니는 오후 9시 10분, 아크라는 오전 10시 10분. 어떤 곳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쌀쌀하기도 했고, 어떤 곳은 구름만 잔뜩 끼었을 뿐 춥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떤 곳은 이제야 여름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아이콘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눈앞으로 시선을 들었다. 저녁노을이 아롱아롱 도시의 뒤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들이 손짓하는 것 같았다. 또 하루가 가려고 해, 하고.

 

“자, 네네. 네네 몫의 화이트데이 캔디.”

“아, 응.”

 

손을 뻗어 포장지에 싸인 작은 상자를 건네받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마주쳤다. 루이가 먼저 웃자, 나도 뒤따라 미소지었다.

 

“겉모양은 달라졌지만, 내용물은 예년과 같은 걸로 준비했어.“

“응, 고마워. 올해도 잘 먹을게.”

 

예상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가방을 열어 받은 걸 조심스럽게 집어넣으면 다른 상자들과 달그락거리며 작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헤에, 이 소리…… 올해는 여덟 개 정도 받았니? 네네.“

“모르겠는데……. 갯수 같은 거 세고 다니지 않으니까.”

“후후.”

 

루이의 말에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잠시 훑었다. 둘, 셋, 넷, …. 몇 개였는지 갯수가 헷갈리는 포장된 사탕이나 초콜렛 따위가 저마다 삐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각각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떠올리자 약간의 부담감이 올라와 어깨가 무거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우정 캔디를 교환하는 일이야 평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에게도 딱히 예외는 아니어서, 몇 년 전까지 줄곧 ‘그러고보니 슬슬 시즌이지,’ 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준비를 시작하고 답례를 주거니 받았다.

 

그런 날들이 이례적인 느낌으로 바뀐 게 고작 1년 사이의 일.

 

가방에 가득 든 화이트데이 선물이 어색하고, 스마트폰의 연락처에 들어가면 늘어 있는 이름들이 아직도 자주 낯설다. 앨범을 누르면 게임 스샷이나 메모용으로 캡쳐한 화면 뿐이던 것 옆으로 ‘사람과 순간들’이란 이름의 폴더가 생성돼 있는 게 놀랍다. 언제나 한몸처럼 다뤄와 이 안에 모르는 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1년 전의 내가 본다면 틀림없이 누구 폰이냐고 경악할 게 분명하다.

돌이켜보니 달라진 게 많아서, 1년 전 거리의 이 저녁불빛을 보던 나와 지금 여기서 엇갈리는 신호등의 표시, 백라이트를 깜빡이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던 나 자신마저 어색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가방을 닫고 이야기를 하고 머플러를 한 번 더 매만지는 과정에서 꺼진 스마트폰 액정 위에 다시 손가락을 올리자 마지막으로 켜둔 화면이었던 세계시간 어플이 저마다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루이의 시선이 잠깐 그 화면에 닿는 모습을 본다. 곧이어 특유의 작은 미소를 짓는 모습도.

 

“돌아가서 읽을 대본은 정해봤어?”

“아직 결정 안 하긴 했어.”

“하게 되면 연락해. 같이 읽을게.”

“응. 어차피 루이랑 같은 걸로 고를 것 같고.”

“’알파’가 여정을 앞두고 회고하는 장면, 근사했지.”

“응. 앞으로도 쭉 좋은 일이 많을 거라는 신호이기도 해서 좋았어. 분명, 더 많은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좋아하는 것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의견이 엇나가는 일은 없고, 많은 언어를 고르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가 전달되는 일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루이는 즐거워 보인다.

 

나도 그렇다.

 

모두와 함께 미국에 다녀온 이래로 하나둘 추가했던 세계시간은 한때 11개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4개로 줄어들었다. 너무 멀리까지 나아가려 시선을 뻗으면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하니까, 미래는 보되 눈앞의 것들에도 집중하자는 다짐이 들어가 있다.

언젠가의 과정에 이별이 있다 해도, 같이 걷는 이 그림자 두 개 사이에 스며드는 날은 훨씬 멀리에 있겠지. 그때가 되면 1년 전에 저녁불빛을 보며 무엇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많은 추억과 즐거움과 함께한다는 감각이, 사이사이 빼곡하게 들어찰 것이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은 유한하되 그것들의 주체가 되는 사람과 인연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도, 루이도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