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관측소 conspicilium

 

“컨트롤, 네가 어떻게 좀 해봐!”

 

 

들릴 리 없는 이름이 들려왔고, 외침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일렉트로는 그 이름이 잘못 들려온 이름이 맞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 붙여진, 혹은 누구에게도 붙여져선 안 되는 이름의 주인은 브린디쉬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방류되는 폐수를 닮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뻗치고 꼬여 있었고, 제대로 된 빗질 한 번 가져보지 않은 짐승의 털마냥 부산스러웠다. 낙엽처럼 바싹 마른 입술과 어두운 공동처럼 퀭한 눈은 누가 보더라도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지 못한다 생각할 게 분명했고, 입고 있는 옷가지 또한 추레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병실의 침대에서 일어나 나온 것만 같은, 넓고 후줄근한 천 쪼가리. 하지만 그가 눕고 자온 곳이 병실 침대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존엄과 희망으로 가득찬 곳과는 정반대의 공간에서 눕고, 자고, 지내왔을 것임을 일렉트로는 아주 분명하게 확신했다. 그건 컨트롤이라 불린 이능력자의 양 팔에 있는 절단 흔적 탓도, 목에 적힌 34라는 문신 탓도 아니었다.

그저, 감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온 몸에 빛줄기처럼 지나간 전류는 필경 그런 단어로밖에 지칭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일렉트로는 센트라를 처음 봤을 때 슬픔을 느꼈다. 자기같이 태어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 때문에.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을 비로소 알게 되어서. 그들 같은 존재가 이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저 녀석을 죽여!”

 

 

스키드로가 일렉트로를 가리키며 맹렬하게 소리지르자 ‘컨트롤’의 초점 없던 눈동자가 천천히 또렷해졌다. 움직임은 홍채 수축보다 더 빨랐다. 일렉트로의 상념도 거기까지였다.

 

전투가 시작됐고, 일렉트로는 그가 왜 컨트롤이라고 불리게 됐는지 빠르게 깨달았다. 그는 매우 정밀한 단위의 에너지에 간섭해 흐름을 제어할 줄 알았고, 포착된 힘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방출해냈다. 일렉트로는 자신의 전기를 순간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컨트롤’을 보며 반은 흥미로워 했고 반은 감탄했다. 그러나 응용 방향의 거의 전부가 파괴적이었다. 이 정도의 제어력이라면 훨씬 정교한 응용도 가능할 게 분명했다. 단순히 자길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거울처럼 반사해 내거나 자기가 만들어내는 힘의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하지만 할 수 없겠지. 그런 방식의 능력 사용이 존재하는 줄도 모를 것이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를 게 분명했다. 마치 컨트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마음껏 전류를 방출하며 뛰어놀았던 과거의 자신처럼.

 

일렉트로는 입맛이 썼고, 자신의 온 신경조직이 미미하게 긴장해 있음을 느꼈다. 눈앞의 ‘컨트롤’을 상대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계획을 세울수록 그랬다.

상대의 능력이 대단하다 한들 응용할 줄을 모르는 이상에야 일렉트로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승부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여기서 저 능력자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든 잔챙이들을 쓸어버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결과를 원했다. 그러려면 능력을 맹렬하게 공격적으로만 발현하는 ‘컨트롤’을 상대로 세심한 덫을 놓아야 했고, 딱 필요한 만큼의 피해만 가해야 했다.

그래도 어렵지 않았다. 할 만 했다. 일렉트로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전류의 제어권을 다시 파고들며 상대의 사지를 향해 뻗혀나갔고, 수없이 위치를 이동해가며 상대가 전격을 반사하는 순간 꼼짝 없이 움직임이 저지당할 만한 곳으로 ‘컨트롤’을 유인했다.

싸움은 순조로웠다. 예상대로, 어렵지 않았다. 어려웠던 건.

 

스키드로의 외침에 걸어나왔던 공허한 눈의 능력자가 명령과 목표 앞에서는 단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일. 그뿐이었다.

 

 

 

 

예진이 열어준 문을 통해 ‘컨트롤’과 함께 원세계로 넘어가자, 땅 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느다랏 빗줄기가 폐수를 닮은 녹색 피부 위로 닿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일렉트로는 이 자가 눈을 떴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했다. 컨트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고 그는 그저 수많은 실험체 중 가장 우수한 개체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건 그런 사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의 촉감,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그 위를 덮는 비나 햇빛 같은 날씨의 변화. 뭇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는 많은 것들.

 

그것들이 자신에게 처음 다가왔을 때, 일렉트로는 자신이 지독하게 유리되어 왔음을 인지했다. 세기의 천재, 세상에 둘도 없을 전기 능력자, 시대의 변환점이 빚어낸 산물, 그런 칭호들은 그에게 어떤 삶의 지표도 제공해 주지 못했다. E라는 이름은 그에게 영광을 제공했고, 매스컴을 통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 그를 향해 감탄과 경의를 자아냈지만, 그에게 그것들을 준 모두가 각자 돌아갈 곳이 있었다. 전기 능력자 협회 사람들은 일렉트로가 앞으로 그가 능력자 사회에 전기 능력의 가능성을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흥분 속에서 논의한 뒤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친구와 동료에게 이야기하러 흩어졌다. TV, 휴대기기, 라디오 등을 통해 그에게 찬사를 퍼부은 사람들은 전자기기를 끈 뒤 자신이 본래 만날 예정이었던 사람, 하고 싶은 일 내지는 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을 향해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시간이 끝나면 일렉트로는 혼자였다. 친구도, 동료도, 하물며 어쩔 수 없이 교류해야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행방이 묘연해진 지 오래였고, 자신의 진짜 아버지조차 아니었다. 그에게는 높은 확률로 진짜 아들이 따로 있었다. 그는 그저 잘 만들어진 대체품이었을 뿐.

 

그런 것들. 그런 사실들을, 컨트롤이라고 불려 왔을 이 자가 맞닥뜨렸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일렉트로는 한없이 궁금한 반면 그 사실을 아는 게 설핏 두렵기까지 했다. 그는 절망할까? 아니면 인정하지 않고 거부할까?

어쩌면 낮은 확률이지만 그는 이런 세계가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거나 기다려왔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쩌면 그를 원세계로 구출해 온 자신에게 감사할지도, 자신과 그가 같은 처지임을 깨달은 뒤에는 기쁨이나 안도감을 느낄지도 몰랐다…….

일렉트로는 전투 이래로 줄곧 곤두선 자신의 신경세포들이 여전히 그러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긴장한 뺨 위로 빗방울이 톡톡 내려앉았고, 일렉트로는 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잡아내기 어려웠다. 긴장감, 초조함, 호기심, 기대감, 그로 인한 흥분, …….

 

확실한 건, 이 자가 어떤 반응을 내보이건 일렉트로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거란 점이었다. 그는 반드시 이 자가 눈을 뜨는 순간에 옆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낯선 환경을 바라볼 이 자를 진정시키고, 서두르지 않으며 대화를 한 뒤, 그에게 ‘컨트롤’이라는 남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 있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는 그가 허락한다면 그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럽게 제안할 것이다. 그를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대할 이 낯선 세계를, 자신이 안내해 주어도 되겠느냐고…….

 

 

여러 의료진과 이능력자의 도움 끝에 깨어난 센트라가 그의 모든 ‘호의’와 ‘선의’, ‘정의감’을 단 한 번도 원한 적 없었다는 걸, 이때의 일렉트로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